리모델링을 통해 사옥으로 변신 한 30년 된 노후 주택
- 홍성범 (pH7 Architects 대표 건축가)
- 9월 12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1일
1980년대 노후주택을 페인트 기업 사옥으로 변신시키다
안녕하세요. pH7 Architects(피에이치세븐 아키텍츠 건축사무소)의 대표 건축가 홍성범입니다. 오늘 소개할 건축물은 용인시 하갈동의 한 1980년대 노후 주택을 페인트 전문 기업 덕우 PCI의 사옥으로 리모델링한 프로젝트입니다.
건축주는 오래된 조적식 벽돌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통해 1층은 페인트 대리점, 2·3층은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불법 증축과 낡은 마감으로 인해 건물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낮은 층고에 두꺼운 천장 마감까지 더해져 공간은 작고 답답해 보였죠.
낡은 마감과 천장으로 인해 답답해 보이는 기존 노후 주택
숨겨진 디자인 자산의 발견...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첫 인상만 본다면 단순히 허물어야 할 노후 주택 건물처럼 보였지만, 잘 들여다 보면 이 주택 속에는 놀라운 디자인적 잠재력이 숨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1980년대 한국에서 보기 드문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건축으로 설계된 주택인데, 삼각형, 원, 사각형 같은 기본 기하학적 형태를 과감히 사용해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속 로봇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독창적인 입면을 갖고 있었죠.
물론 이런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노후 주택 건물을 기괴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희소성과 상징성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이 독창성이야말로 건축적 자산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희(ph7 architects)는 기존 형태를 숨기거나 지우기보다는 바로 그 ‘이상함' 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했죠.
사실 초기 논의 단계에서 건축주께서는 건물 전체를 철거하고 새로 짓는 방안도 고려하셨지만, 우리는 이 고유하고 독특한 실루엣이 오히려 브랜드 자산, 더 나아가 건축적인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결과, 외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독특한 컬러와 질감으로 새 옷을 입히는 리모델링/리노베이션이 시작될 수 있었죠.
마친 일본 애니메이션에 로봇과 같이 생긴 노후 주택의 형태
페인트 기업다운 방식으로 색을 말하다
이 프로젝트는 사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진행된 노후주택 리모델링이었습니다. 건축주는 페인트 전문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설계 초기부터 컬러를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삼아,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향을 제안드렸죠.
특히 의미 있었던 점은, 단순히 페인트 업체로써 컬러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도장 작업을 건축주께서 직접 시공함으로써,
덕우 PCI 만의 브랜드 컬러와 기술적 역량이 공간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습니다.
외부 창호 프레임 / 철골 기둥: 버건디 컬러
1층의 콘크리트 보, 2·3층 철골 보: 그린 컬러
외부 벽돌 벽체: 그레이 스타코 마감
기존 붉은 벽돌 외관
기존 노후 주택의 구조를 드러내는 솔직한 태도
천장 마감을 제거하자 드러난 콘크리트 보와 기둥, 새롭게 보강된 철골 구조… 우리는 이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노출시키고 싶었습니다. 기존의 억지스럽고 작위 적인 마감들을 겨우 제거하고, 건축물의 가장 순수한 구조물과 마감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정말 좋았었죠.
그래서 저희는 건축물을 마감으로 감추는 대신, 빛과 색을 통해 기존의 벽돌벽체와 새로운 철골 구조를 강조하는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철골, 골강판, 조명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공간에 풍부한 깊이를 더했고, 노후 주택만이 가진 시간성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공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노후된 마감으로 쌓여진 기존 주택 공간 (3층)
콘크리트 보를 물들인 그린 컬러 / 오래된 콘크리트 천장을 은은히 비추는 반투명 골강판
과거의 흔적을 존중하는 방식
또 이 노후주택의 중앙에는 아주 멋진 계단실이 하나 있었는데, 이 곳은 원형창과 회전 계단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공간이었죠. 저희는 이 계단실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계단과 창이 갖는 클래식한 조형성을 유지하면서, 창문과 계단 디딤판, 난간 정도만 새로 교체하고 그린과 버건디 컬러로 심플하게 도색만 진행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계단의 기둥도 그대로 썼구요. 이를 통해 원형의 계단 공간은 옛 건축 언어와 새로운 디자인이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계단 전후 사진 (BEFORE & AFTER)
노후 주택의 거친 벽돌이 살아 숨쉬는 공간
이 노후 주택에는 원형 계단 뿐만 아니라, 더 멋진 요소들도 많았습니다. 마감으로 덮여 있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기존 벽체를 해체하면서 이 거친 벽돌 벽체가 나타났거든요. 흰색 마감 뒤에 숨겨져 있던 이 벽돌의 거친 질감은 공간에 독특한 깊이를 더 해줬습니다. 우연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발견이 되었죠.
저희(ph7 architects)는 이 오래된 벽돌, 낡은 콘크리트 천장, 철골 구조, 반투명 골강판 등 서로 다른 시대의 재료가 한 공간 안에서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 질 수 있도록 디자인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이를 통해 건축물의 시간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풍부한 공간감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반투명한 골강판을 투과하여 은은하게 비춰지는 오래된 콘크리트 천장
컬러, 구조, 시간... 그리고 브랜드
덕우 PCI 사옥 (노후주택 리모델링)은 단순히 낡은 주택을 고치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브랜드가 공간을 통해 말하는 방식을 실험한 프로젝트였고, 건축이 그 이야기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색과 구조, 기능과 서사가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pH7 Architects는 시간과 공간, 브랜드가 혼재하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고자 노력 했습니다.
